[심층분석] 상해 임시정부 청사 고증 오류와 임시의정원 기사록의 비밀

본문 바로가기
건강,생활

[심층분석] 상해 임시정부 청사 고증 오류와 임시의정원 기사록의 비밀

by 오디엘 2025. 12. 31.
반응형
SMALL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의 역사적 실체와 법적 수립 근거: 1919년 법령집 및 건국강령의 4월 11일 기록 분석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수립된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이다. 그동안 학계와 정부는 수립 기념일을 4월 13일로 유지해왔으나, 이는 일제의 정탐 자료와 사료 편찬 과정에서의 오류에 기인한 것이었다.

반면, 임시정부가 직접 발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령집』과 『대한민국 건국강령』 등 1차 법적 사료들은 일관되게 4월 11일을 수립의 기점으로 명시하고 있다. 본 보고서는 임시의정원 기사록과 법령 조항을 정밀 분석하여 4월 11일 수립의 법적 정당성을 규명하고, 초기 청사 고증의 오류와 현대 보훈 정책의 과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1. 법령집과 건국강령에 나타난 4월 11일 수립의 법적 근거

정부가 수립일을 확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근거는 외부의 관찰 기록이 아닌, 정부가 스스로 공포한 '법령'과 '헌법'의 명시적 조항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령집 속의 4월 11일 기록은 다음과 같이 명확히 나타난다.

'대한민국 법령 제1호'와 임시헌장의 제정

  • 법령 제1호의 상징성: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법령 제1호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제라는 정체가 법적으로 성립된 날이 4월 11일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이다.
  • 기사록과의 일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기사록』에 따르면, 4월 10일 밤 10시에 소집된 제1회 의정원 회의는 밤샘 논의를 거쳐 4월 11일 오전 10시에 종료되었다. 이 회의에서 국호 결정, 관제 제정, 국무원 선출, 헌장 선포가 모두 완결되었으므로, 법적 효력은 4월 11일부터 발생한다.

대한민국 임시헌법(1919.9) 전문의 증언

  • 헌법 전문의 명시: 1919년 9월 11일 통합 임시정부가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헌법』 전문에는 "임시의정원은 민의(民意)를 체(體)하여 원년(1919) 4월 11일 발포한 10개 조의 임시헌장을 기본삼아 본 임시헌법을 제정하노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정부 스스로가 자신들의 뿌리와 성립일을 4월 11일로 규정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법적 성명이다.

대한민국 건국강령(1941)의 역사적 재확인

  • 조소앙의 고증: 1941년 11월 28일 임시정부가 국무회의 의결로 선포한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1장 총강 제5항에는 "우리 민족이 3·1 혈전을 발동한 원동력이며, 같은 해 4월 11일에 13도 대표로 조직된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임시정부와 임시헌장 10조를 창조·발포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법통의 계승: 건국강령은 수립 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4월 11일을 대한민국 건국의 날로 공식화하고 있으며, 이는 1948년 제헌헌법 전문으로 이어지는 법통의 핵심 고리가 된다.

2. 1919년 사료의 기록적 불일치와 4월 13일 오류의 원인 분석

정부가 1989년 기념일 제정 당시 4월 13일을 택했던 것은 내부 법령보다는 외부 기록과 주관적 회고록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외부 기록의 한계와 정보의 시차

  • 조선민족운동연감의 오류: 일제가 작성한 정탐 자료인 『조선민족운동연감』은 4월 13일을 수립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상해 현지에서 대외적으로 선포문이 뿌려지거나 일본 영사관이 정보를 입수한 시점을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 4월 22일 한성정부 통지 기록: 4월 22일 회의에서 한성정부에 4월 11일 수립 사실을 알리기로 결정한 내용이 4월 13일 자의 다른 문건들과 혼선되면서, 일부 학계가 이를 선포일로 오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임시사료편찬위원회 기록의 특성

  • 주관적 기록 방식: 1919년 7월 조직된 사료조사편찬회는 안창호, 이광수 등이 참여하여 짧은 기간(84일) 내에 사료집을 완성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집필진은 보안과 긴박한 정세 속에서 기억에 의존하거나 주관적인 표현을 사용했으며, 특히 4월 10일 이후의 행적을 기록할 때 공식 행정 문서인 '기사록'보다는 정치적 의미를 강조하는 서술 방식을 택했다. 이로 인해 사료집과 실제 법령집 사이의 미세한 날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3. 초기 청사 고증의 학술적 비판: '보창로 321호' 문제

일부 학계와 정부 기관이 인용하는 상해 보창로 321호(하비로 321호) 청사론 역시 1차 사료와 배치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 임시의정원 회의록의 침묵: 가장 정확한 근거가 되어야 할 『상해임시의정원 회의록』에는 보창로 321호를 최초 청사로 명시한 구체적 문구가 없다.
  • 학계의 무비판적 인용: 일부 학자가 독립운동가의 거소나 나중에 확보된 서양식 건물의 사진(1919.10.11 촬영)을 근거로 이곳을 '1호 청사'라 명명한 것이 국가보훈부와 광복회 자료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4월 10일의 회의 장소는 보창로 329호 등 다른 장소였을 가능성이 크며, 보창로 321호는 정부의 위용을 갖춘 후의 외교 거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보창로 321호. 일부학자는 최초청사라 기록 하고 있으나. 6번째 사용기록이다

4. 현대 정부의 대응 정책과 법적 보존 체계 (2024-2025)

국가보훈부는 2019년 수립 기념일을 4월 11일로 정상화한 이후, 법령에 근거한 정밀 고증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 국외 사적지 관리 종합계획: 2025년까지 중국 내 483개 사적지에 대한 실태조사를 정례화하고, 법령집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기존 사적지의 안내 정보를 수정하고 있다.
  • 입법적 개선 과제: 현재 '두루뭉술하게' 수정된 보훈 관련 법령을 보완하기 위해, 임시정부의 법통과 성립일을 법령집의 기록에 근거하여 명확히 규정하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관리에 관한 별도 개별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5. 결론 및 제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성립일은 법령 제1호(임시헌장), 통합 헌법 전문,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강령이 한결같이 가리키고 있는 1919년 4월 11일이 유일한 법적 근거이다. 그동안 정부가 4월 13일이라는 오류를 유지했던 것은 우리 내부의 당당한 행정 기록보다 일제의 정탐 기록이나 사료 편찬 과정의 회고적 기록에 더 큰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학술적 과제와 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1. 법령 중심의 역사 교육: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령집』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헌법 전문에 명시된 4월 11일의 의미를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교육해야 한다.
  2. 청사 고증의 전면 재검토: 사진 한 장에 의존한 보창로 321호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의정원 기사록과 법령집에 근거한 실질적 활동 공간(보창로 329호 등)에 대한 정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3. 디지털 아카이브 고도화: 1919년의 법령 원문과 현대적 해석을 결합한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여, '정확한 근거'를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4월 11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백성'이 '황제'가 된 국민주권의 날이며, 이는 임시정부가 남긴 법령집 속에 영원히 박제된 진실이다

 

 #상해임시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 #4월11일 #임시의정원기사록 #국가보훈부 #독립운동 #역사고증 #2025보훈정책 #임시헌장 #건국강령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