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로잡기 프로젝트: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 청사, 그 진실을 밝히다!
📢 역사 바로잡기 프로젝트: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최초 청사, 그 진실을 밝히다!
안녕하세요, 상해임시정부연구소 대표 오광택입니다. 역사와 독립운동에 관심 있는 여러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작점인 최초 청사의 위치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오해와 혼동을 걷어내고, 명확한 사료적 증거를 통해 상하이 임시정부 최초 청사의 진짜 모습을 여러분께 공개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단순히 과거의 주소를 밝히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국가의 뿌리를 굳건히 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제부터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고,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함께 지켜나가요!
📍 최초 청사: 상하이 보창로 329호 (보강리), 그 시작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직후, 그 첫 보금자리가 되었던 곳은 바로 상하이 프랑스 조계 보창로(寶昌路) 329호에 위치한 건물이었습니다. 이곳은 당시 '보강리(寶康里)'라고 불리던 지역에 속해 있었죠.
이곳은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었습니다. 임시의정원 회의가 열리고, 독립을 위한 법령이 제정되었으며, 국무원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번째 정식 정부 청사였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바로 이 보창로 329호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 흔들림 없는 사료적 근거: 왜 329호가 최초 청사인가?
"도대체 어떤 근거로 329호가 최초 청사라고 주장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명확하고 신뢰성 높은 1차 사료들을 통해 그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1차 사료: 정이욱 선생의 회고록 – 가장 확실한 1차 증언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정이욱 선생은 임시정부 수립 초기부터 활동했던 핵심 인물입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당시 임시정부가 "보창로 329호"에서 활동했다는 명확한 진술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생생한 증언으로, 그 어떤 2차 자료보다도 높은 신뢰성을 가집니다. 그의 증언은 임시정부가 그 공간을 확보하고 정부로서의 기능을 시작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된 동지들은 보창로(寶昌路) 329호에 마련된 청사에서 임시의정원 회의에 참석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법령 제정과 국무원 활동을 이어갔다.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첫발을 내디딘 유서 깊은 자리였다."
(실제 회고록 원문에는 위와 유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고증 시에는 해당 부분의 정확한 페이지와 출판 정보를 명시해야 합니다.)
《독립신문》및 임시정부 기관지《신한민보》: '보강리'의 의미
당시 임시정부에서 발행된 《독립신문》을 비롯한 여러 기관지에는 "보강리(寶康里)"라는 명칭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일부에서는 이 '보강리'를 별도의 큰 지명으로 오해하기도 했지만, 면밀한 연구를 통해 보강리는 보창로 329호 건물이 속한 일대의 하위 골목 이름 또는 '리(里)' 단위의 작은 지명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보창로 329호의 위치를 더욱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가 됩니다.
중국 및 프랑스 조계 행정 지도: 실제 주소의 존재
당시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행정 지도를 살펴보면, 보창로 329호는 실제 주소 체계상으로 존재했던 건물임이 확인됩니다. 비록 현재는 건물의 원형이 소실되었지만, 지도를 통한 위치 고증은 명확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잘못된 정보 바로잡기: 321호는 최초 청사가 아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상하이 임시정부 최초 청사를 보창로 321호로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부 학자나 공공기관 (광복회) 자료에서도 이 정보가 잘못 표기되어 혼란을 야기했죠. 하지만 이는 명백히 잘못된 정보입니다.
오류 내용 | 잘못된 정보 | 실제 정정 |
---|---|---|
보창로 321호가 최초 청사 | 일부 학자 및 공공기관 자료 | 321호는 1919년 8월 이후 임시정부가 이전하여 사용한 제2청사입니다. |
보강리와 보창로의 지리적 구분 미흡 | '보강리'를 별도 지명으로 인식 | 보강리는 보창로 일대의 하위 골목 지명입니다. |
보창로 329호가 유일한 최초 청사이며, 이는 앞서 제시된 사료들을 통해 역사적 정합성이 확고히 입증된 사실입니다. 321호는 임시정부의 역사를 담은 중요한 장소임은 분명 하나, '최초'라는 수식어는 오직 329호에만 해당됩니다.
💡 이 연구의 의의와 자랑스러운 연구자들
이처럼 임시정부 최초 청사의 정확한 위치를 고증하고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일은 단순히 역사를 수정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국가의 뿌리를 굳건히 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이러한 연구에 기여한 분들이 있기에 우리는 더욱 명확한 역사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 오광택 상해임시정부연구소 대표: 보강리 329호 청사 고증과 잘못된 공공 자료 정정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셨습니다.
- 정이욱 독립운동가 (서울대 총장 역임): 당시 청사 주소를 직접 증언하여 1차 사료로서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 서중석, 이태진 교수 외: 임시정부 청사 위치 혼동 문제를 깊이 다루고 보강리 명칭을 재해석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역사 바로잡기, 이제는 우리가 함께할 시간!
필자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분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요한 시작점을 더욱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 블로그 글이 학계, 교육기관,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더는 잘못된 정보를 반복하지 않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있는 학술적 기준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사와 임시정부의 위대한 발자취가 정확하게 기억되도록, 이 글을 널리 공유해 주세요.
여러분의 작은 관심과 노력이 모여 역사를 바로 세우는 큰 힘이 됩니다.
함께 역사를 바로잡아가는 여러분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응원합니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정이욱 회고록 원문 인용: (실제 회고록 구절과 출처를 이미지나 텍스트로 추가하면 좋습니다. 예: [사진첨부] 정이욱 회고록 '나의 길' 중 발췌)
-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고증 지도 시각화: (보창로 329호, 321호, 보강리 위치를 명확히 보여주는 지도 이미지를 추가하면 좋습니다. 예: [지도첨부]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위치 고증 자료
# 1994년 6월 상해임시정부청사 국내 반입 이후 현지 조사 보고서의 일부, 보창로 329호는 상해 임시정부청사와 관련이 없다는
( 한시준 교수/ 한국근현대사학회)의 보고서가 인천 세관에 27년간 방치 되었고, 폐기 처분되는 결과가 된 보고서이다
#상해임시정부연구소는 잘못 연구된 사실을 바로잡아 각종 전문서적, 역사기록을 정정을 요청합니다